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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책 리뷰 ] 박상미, 나의 사적인 도시 뉴욕, 난다
    일상/후기 1: 책 리뷰 📚 2021. 11. 11. 00:03

    * 내가 좋아하는 장르, 에세이
    내 기억에, 적어도 중학생 때부터 에세이를 좋아했다. 중학생 때 읽었던 에세이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이제는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님의 책들이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내 생애 단 한 번’,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이 세 책을 모두 다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두 권 이상은 읽지 않았을까 싶다.
    에세이의 매력은 타인의 일기장같다는 것 아닐까. 비록 대중에게 공개하는 글이기 때문에 내밀한 속마음을 다 적지는 않지만 충분히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보통의 일기장보다 글도 잘 쓴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대화에서 깊은 대화보다 얕은 대화의 비중이 늘어나고, 나조차도 말을 하지 않거나 숨기는 것이 많아진다. 심지어 가깝고 친한 사람들에게조차 말이다. 상대방이 관심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 생각이 정리 안 된 이야기들, 얘기해도 달라질게 없는 이야기들이 필터링되고 남은 이야기들만 한다. 그리고 전보다 덜 자세히 말한다. 게다가 만나는 사람들도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삶에서 타인의 에세이집 한 권은 큰 재미를 준다.

    * 가고 싶은 도시 뉴욕과 좋아하는 미술의 만남
    책을 구매한건 이직이 결정되고 여유가 생겼을 때다. 코로나지만, 나중에 내 로망인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 어디로 갈까 생각하던 와중에 눈에 들어온 책이다. 뉴욕과 미술이라니. 미술사 전공하는 친구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나중에 같이 가자고 기약없는 약속도 했을 때였다. 소재 자체가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다가 글의 내용도 저자만의 독특한 시선과 감성이 있었다. 뻔하지 않고 낯선 생각들이 많아 두 번, 세 번 읽어도 곱씹어보게 되는 내용이 많았다.

    * 예술가들의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
    미술에 작지만 관심을 줄곧 가져오긴 했다. 중학생 때까지도 미술학원에 다녔고, 특히 중학생 때는 재밌어서 미술사 공부를 많이 했다. 대학생이 되고서는 종종 전시회에 다녔다. 1학년 때만큼 자주 가지는 않지만 지금도 1년에 아무리 적어도 2,3번은 가는 것 같다. 아쉬운건 배경지식도 없고 전시회를 즐기는 스킬도 없어서, 작품만 보기에도 바쁘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림 옆에 붙은 설명을 엄청 열심히 읽으면서 천천히 그림을 본다. 이제는 좀더 편안하게 내 방식대로 그림을 보려고 노력하긴 한다. 이런 상황이니 조금 유명한 작가라도 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지거나 ‘만약에 ~’를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반면, 미술계쪽 전문가인 저자는 한 인간을 보는 시선으로 예술가들을 바라본다. 예를 들면, ‘내부의 부조리함’편에 ‘프란체스카 우드맨’이라는 사진작가가 나온다. 이 작가는 스물두살에 자살했다고 한다. 이걸 알고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잘 알지 못하는 옛날 사람이 자살을 했다고 하니 그런가보다했다. 하지만 뒤이어 저자는 보통의 다른 작가들처럼 우드맨의 초기 작품이 기이하고 강렬한데, 나이를 먹은 우드맨은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까 궁금하다고했다. 진짜 미술을 애호하는 사람은 이런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짜 덕후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걸 궁금해하고 상상하겠지. 그리고 그 덕분에 전문가가 될 수도 있겠지. 부러웠다.
    이밖에도 필립 거스턴과 조르죠 데 키리코 등등 많은 작가들이 저자의 에세이에 나온다. 몇몇 작가는 반복해서 나와 기억하게 된다. 덕분에 책을 읽다보면 미술과 미술계에 좀더 친숙해지는 느낌이 든다. 패션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이 나와 재미있었다.

    * 덕후같은 삶에 대한 부러움
    최근 가졌던 고민 중에 하나는 “개발자를 계속 하는게 맞는 것일까” 였다. 사실 일 자체는 만족스럽다. 문과 출신이지만 학생 때도 누군가를 설득하기 보다는 내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고, 누군가를 설득하고, 기업의 이익을 생각해야하는 다른 문과 직업군은 맞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고민하게 된 이유는 내가 전형적인 개발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이 보통의 생각이고,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거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특이한 사람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나는 전형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실 이 생각을 처음 한 건 유튜브를 보면서였다. 누군가 나한테 개발자니까 유튜브도 개발자들 채널 구독해서 보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전혀 보지 않고 있었다. 이건 뭔가 아니라는 위기의식이 들어 급하게 구독할 채널을 구석구석 찾아보았지만 내 마음을 잡는 채널이 없었다. 컨텐츠는 둘째치고, 유튜버의 외적인 스타일, 감성, 언어 등등을 고려했을 때 그렇게 끌리지 않아서였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저자가 부러웠다. 덕업일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삶은 일과 일상이 구분되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도 저자는 미술계를 생각했고 관련된 것을 발견했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하는걸까. 유튜브 채널 일화는 큰 일 같아보이지는 않지만 그동안 내가 모호하게 느껴왔던 것들이 구체적인 증거로 드러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올해 안에는 컴퓨터 공학쪽 에세이를 꼭 읽어보리라.

    * 인상깊었던 문장들

    - There’s no such thing as originality anyway, just authenticity.(p.288)
    - 어떤 예술작품이 아무리 새로운 것 같아도 그건 오래오래 계속되는 기나긴 대화의 일부이다. 예를 들어 잭슨 폴록이 정말 황당하게 독창적인 걸 그려낸 것 같지만 초현실주의 없이 잭슨 폴록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p.289)
    - authentic: 남의 생각을 빌리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하는 (p.289)

     

    - 미술사의 흐름이 사물 그 자체보다 개념이 강해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개념을 바탕으로 한 작업들은 개념이 드러나면 종종 그 신비로운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명백한 의도가 결과물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반면 훌륭한 작품들은 의도와 결과물 사이에 깊고 넓고 알 수 없는 세상이 있는 듯하다.(p.298)

     

    - 우리는 수면에 부서져 반짝이는 햇빛을 좋아했다.(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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